이미 페이스북에서 문명을 떨치고 있는, 소리 없이 많은 팬을 가진 왕년의 열혈 운동가 조명자 작가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저자는 1970년대 여고졸업 후 취직한 전자공장에서 '등 떠밀려' 노조활동에 나선 이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과 함께 살아왔다.
1990년대 들어 '문민정부','국민의정부'가 들어서자 운동권 남편과 1996년 남편의 고향인 광주로 귀향했다. 그 와중에 유방암으로 한쪽 유방을 잘라내고 10년을 이겨내니 간암이 찾아와 투병 중에 있다.
남편이 소박한 생업에 성실하고 병간호 지극한 것에 감사하고 "자랄 때 사랑은 있었으되 돌봄은 없었다"는 두 아이가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준 것이 행복하다. 지금은 담양 산골 집에서 이웃들과 정도 나누고 속도 터져가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조 작가의 글은 무엇보다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글 솜씨가 참 좋다. 따뜻하고 통 크고 세상물정 잘 아는 현실감각도 지녔는데 올바르다. 타인과 관계 맺는 모습을 읽다보면 마음이 그냥 따뜻해지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운동권의 추억이 없는 이들도 공감할 보편성이 바탕에 있는 것이 조 작가의 글이 주는 최대의 미덕이다.
'40년 전 그 남자아이가 생각난 하루'는 발문을 쓴 황광우 시인이 황순원의 '소나기' 뺨치는 수기라고 장담할 만하다. 우당탕 요란하게 설거지하다 뒤통수 따가워 돌아보니 마주친 시어머니 눈길이 민망해 우하하 폭소 터트리는 엉뚱함, 웃다 갑자기 그 눈길이 남편감옥 뒷바라지에 생계까지 책임진 며느리 화풀이인가 마음 졸이는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역시 한편의 단편소설감이다.
운동하다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인연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아름답고 안타깝다. 고상하지 않아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의 모습들이 가득하다.
책에는 다 실리지 않았지만 페이스북에서 출세한 운동권들이 잘 해주기를 바라는, 그래서 그들이 못할 때 울분과 안타까움이 치솟는 열혈 유전자(DNA)는 여전해서 정치권의 덜떨어진 행태에 한마디 일갈할 때는 저들이 제발 봤으면 싶을 정도로 시퍼렇다.
글이 책으로 묶여 출간된 사연도 따뜻하다. 2007년 여름 마라도 절에서 남편 윤한봉의 49재를 모시던 아내 신소하는 조 작가가 오마이뉴스에 쓴 '윤한봉의 추억'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때부터 조 작가의 글을 찾아 읽으며 꼭 책으로 묶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출판을 한사코 사양하는 조 작가에게 비매품을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아내고 출판비용은 하늘로 간 윤한봉 선생이 모두에게 준 선물이라며 감당한 그 뜻이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