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종일 그치지 않았다. 나는 오정묵 가수('님을 위한 행진곡' 최초 녹음가수)가 뮤지컬 '광주'를 보러가자 하여 뜻하지 않게 눈과 귀의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비는 내렸으나, 광주문화예술회관은 붐볐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사실에 나는 놀랬고, 관중의 연령대가 50∼60대가 아닌 30∼40대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오정묵 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너무 감동적이야" 픽션이 사실 보다 더 진실한 진실을 전할 수 있다. 이는 문예이론의 기초이다. 하지만 뮤지컬 '광주'의 경우, 좀 더 치열하게 사실적인 작품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보다 사실적인 뮤지컬 '광주'를 위해 나의 의문점 몇 가지를 적어 본다. 뮤지컬 '광주'의 도입부에서 나는 낯선 구호를 보았다. 광주 도청의 벽에 붉은 글씨로 "유신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는데, 이 구호가 나에겐 무척 낯설었다. 1980년 5월 서울의 봄 당시 나는 "비상계엄 해제"를 외친 적은 있었으나,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진 않았다. "유신철폐, 독재타도" 구호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사살되기 이전, 대학가에서 외치던 구호였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유신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사용하였던지 사실을 확인하길 바란다. 극중 인물들이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나에겐 매우 거슬렸다. 운동권에서 동무,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던 때는 1981년 이후였으며, 그것도 노동운동권에서 그것도 비공개 조직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주역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운동권의 용어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용어였다. 1980년 5월 27일 윤상원과 함께 도청을 지키던 이양현 씨는 "상원 씨, 저승에 가서도 불의가 있으면 학생운동을 하자."고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것으로 회고하였다. 윤상원 씨가 계엄군을 향해 총격을 가하던 중 계엄군의 총을 맞아 절명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장면도 좀 이상했다. 당시 시민군이 소지한 총은 칼빈 총이었기 때문에 M16처럼 자동으로 연발할 수 없었다. 새벽 4시, 시민군은 총을 들고 경계를 하는 중이었다.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오발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계엄군을 향해 연발한 경우는 없었다. 이 점 확인해주기 바란다. 문제의 설정은 편의대이다. 뮤지컬의 도입부에서부터 끝까지 보안사의 스파이 조직인 편의대가 작품 속 갈등의 한 축으로 설정되었는데, 매우 위험스런 설정이었다. 독재 정권 하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중앙정보부 혹은 보안대의 요원들이 평범한 시민을 가장하여 이쪽 운동권으로 침투하였다. 이른바 프락치다. 이들 프락치의 기본 임무는 운동권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 '광주'에 등장하는 편의대의 임무는 "시민들로 하여금 총을 들도록 자극하는, 이른바 폭도 유인극"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편의대 요원들이 항쟁 초기부터 광주에 투입되어 각종 미션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편의대 요원들이 시민들로 하여금 총을 들도록 자극하였다는 설정은, 광주의 진실을 왜곡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지면이 짧아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한다. 또, 계엄군과 대치중에 있는 시민군이 '씨발 새끼'라는 욕설을 발설하는 장면이 두 번 나왔는데, 나의 귀에는 매우 거북스러웠다. 욕설은 절제하는 것이 좋으며, 꼭 사용한다면 상황에 적절한 욕설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씨발'은 전투 상황에서 사용하는 욕설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에 관해서 지적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작품의 주제곡이라고 하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은 아무나 아무 때나 마구 부를 수 있는 곡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목이 메어 이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한다. 뮤지컬 '광주'에서처럼 춤을 추고 웃으면서 부르는 노래는 더욱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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