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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의 아름다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 황광우 편 서문 그곳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에 나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1975년 김남주와 윤한봉을 만났고, 1978년 윤상원과 박효선을 만났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고 소설가 홍희담은 기술하였는데, 그들은 분명 영혼이 빛나는 사람, 만나 보기 힘든 인품들이었다. 윤상원은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역사의 제단에 바치는데 기꺼이 동의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갔을 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내려 앉는다. 김남주는 독재자의 무덤을 파러 간 사람, 파러 갔다가 스스로 독재의 무덤에 갇힌 사람, 자유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젊음을 바친 사람이었다. 윤한봉은 누구인가? 그는 동지 아끼길 제 몸처럼 아낀, 자기 것이라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 마지막까지 거름으로 퇴비로 살아간 사람이었다. 오월 도청의 홍보부장을 자임한 박효선은 그 날 밤 5월 27일 자정, 총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죽는 그 날까지 그 날을 괴로워하며 부끄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모두 망월동에 누워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윤상원은 어렸을 때 남긴 일기가 좋았다. 김남주는 옥중에서 쓴 편지가 좋았다. 윤한봉은 전라도 사투리로 읊은 구술록이 좋았다. 박효선은 젊은 날 고뇌를 적은 일기가 좋았다. 윤상원은 열권의 일기를 남겼다. 일기는 그의 분신이었다. 윤상원은 가고 없지만, 우리는 일기 속에서 윤상원을 만날 수 있다. 1960년 초등학교 4학년에 쓰기 시작한 일기가 1968년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계속된다. 나는 소년 윤상원이 쓴 일기가 너무 좋은 어줍지 않은 문필로 몇 줄의 평을 달았다.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서다. 그런데 나는 김남주의 글을 내 마음대로 고쳤다. 본디 시인의 글은 글자 한 자 손대는 것이 아니로되 무엄하게도 나는 시인의 글을 만져버렸다. 내가 시인의 글에 감히 손을 댄 것은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의 후배들이 시인의 글에 가까이 다가서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17세 소년(필자)에게, 처음 만난 어린 후배에게 대뜸 불온 유인물을 주고 배포하라 명령하였다. 그때 그는 후배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지금 나도 선배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허어!’ 한마디면 만사가 끝나는사람, 거칠 게 없는 사람이었던 형은 나의 이 무모한 짓을 보면서 또 ‘허어!’하고 끝낼 것이라 확신한다. 반대로 윤한봉의 구술은 원음 그대로 살렸다. 윤한봉은 말의 천재였다. 한번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말을 풀어내었다. 우리 모두 그의 말에 도취하였다. 1980년대 최루탄을 맡아 본 사람이라면 김남주의 시를 다 알 것이나, 윤한봉의 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하여 나는 저 전라도 사투리에 실려 나오는, 말의 천재 윤한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만난 광주 사람들 중 참으로 기이한 분이 박효선이었다. 살아 있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80년 오월에 수행한 역할을 떠벌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수배자인 걸로 알았다. 그 뜨겁던 날, 80년 5월 전남 도청 앞 분수대에서 연출되었던 시민궐기대회의 총 기획자였음을 알게 된 것은 불행히도 그가 운명한 이후였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고....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 가장 괴로워한 사람, 그가 박효선이었다. <빛고을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네 분의 기록물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또 들불을 일으키고 먼저 간 박기순의 이야기, 계엄군의 총을 맞고 산화한 박용준의 이야기, 옥중 단식 투쟁 끝에 영면한 박관현의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유신체제와 맞서 싸운 나병식의 이야기도 살짝 곁들였다. 다들 자랑스러운 빛고을의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묶어 놓으니 1960년에서 시작하여 1982년까지의 한국 현대사가 편년체로 정리되었다. 우리에게는 흘러간 아름다운 추억이고 후세들에겐 빛나는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 했다.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없다. 광주를 빛낸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 2019년 8월 15일 황광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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