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4년 동고송 워크숍
동고송 워크숍이 1월 3일~4일 양일간 ‘전남 장흥 우드랜드’에서 열렸다. 30여 명의 회원과 이사가 참석하여 ‘장석 시인 시집축하연’을 시작으로 ‘신입 이사 소개’와 ‘2024년 사업활동 보고 및 평가’, ‘2025년 사업활동’ 논의를 하였다. 동고송 신년 계획 등에 앞서 항공 참사 기간임에 애도를 표하며 숙연하고 내실 있는 내용을 워크숍에 담았다. 이튿날에는 억불산 새벽 산행과 편백숲 걷기를 하였으며 한승원 작가의 ‘해산토굴문학관’을 방문하였다. 한승원 작가는 인문 강연에서 “시인과 소설가는 글로써 아프고 슬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사람들이다”라며 딸이 받은 노벨문학상이 이런 글을 써온 칭찬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새해 벽두, 동고송 워크숍에 참석한 회원과 이사들은 올 한 해 ‘뜻있는 인문의향 활동’을 연속해 펼쳐갈 것을 다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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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고송 정기총회
올해로 창립 7년째를 맞이한 동고송은 2025년 2월 10일(월) 오후 6시, 동고송 사무실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회원과 이사 25명이 참석하여 2024년 사업활동과 결산 심의, 평가와 2025년 인문의향 사업계획과 검토가 있었다. 2024년 사업활동으로는 그간 인문사업의 큰 축으로 연인원 3,000여 명이 다녀간 광산아카데미인문특강과 역사인문기행(4회), 유럽테마기행(폴란드)와 동양고전공부반모임(노자주역반, 고전문학반) 등 각종 인문특강을 실시하였다. 의향활동으로는 독립운동가 선양사업과 오월항쟁 정신계승을 위한 책 『시민군』 출간례와 광주와 대구에서 시네북토크, 오월의료인구술집담회를 개최하였다. 2025년 올해도 인문 지평을 넓히고 의향정신을 새기는 동고송 이름에 걸맞은 활동으로 1,000여 회원들의 성원에 부응해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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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국의 응원봉, 오월항쟁을 만나다!
2월 15일(토) <노회찬재단>이 마련한 ‘역사답사반’의 응원봉 40여 명이 빛고을을 방문했다. ‘응원봉, 광주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전국에서 오월항쟁답사를 신청한 응원봉들은 ‘518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오월민주광장’ 일대를 순례하며 오월정신을 기렸다. 이날 오후 6시 <아트스페이스흥학관>에서는 동고송 황광우 작가의 오월특강이 마련되었다. 참여한 이들은 시종 진지한 자세로 오월과 탄핵 시점의 현안에 대해 질문하였다. 황 작가는 강의에서 여의도광장의 응원 불빛과 따뜻한 음식 나눔, 눈 오는 밤의 밤샘 시위는 80년 오월에서 시작된 끈끈한 공동체문화임을 전했다. 항쟁 기간에 헌혈하다 총에 맞은 여고생 박금희와 주먹밥을 나누던 양동시장 어머니들의 헌신을 떠오르게 했다고 말했다. 계엄령 발포는 모두 불법이며 끝내 학살과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죽은 전두환이 있었기에 재연된 것이라며, 오월정신의 계승과 오월정신 전국화의 방법을 강연에서 강조했다. 강연 말미에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기동타격대동지회 분들이 나와 그날의 오월현장을 증언하면서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광주를 찾은 응원봉 젊은 분들은 “광주의 숨결과 초등 딸아이를 위해서, 오월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아서, 오월 영령들을 만나고 싶어서, 광주에 빚이 있어서 왔다” 등의 문구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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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흥학관’의 역사에 대한 황광우 작가의 강연 내용이다.
“그곳을 갔다 오면 눈빛이 달라진다.”
100년 전 광주의 선조들은 모두가 의기에 찬 분들이었다. 일본 순사들이 광주 사람들 앞에선 맥을 쓰지 못하였다. 이 의기의 산실, 독립운동의 소굴이 흥학관이었다. 당시 흥학관에서는 <광주청년회>를 비롯하여 모든 청년 운동 단체들이 활동하였다. 야학도 운영하고, 연극도 상연하고, 정구도 쳤다. 1926년 6·10 만세 운동의 여파로 광주에서도 학생비밀결사가 결성되었다. 그 유명한 <성진회>다. <성진회>의 창립을 제안한 이가 왕재일 선생인데, 이분은 구례 출신으로 광주에 기거할 곳이 없었다. 흥학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고학(苦學)을 하였다. <성진회> 출신이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선봉장이 누구던가? 바로 장재성 선생이시다. 이분의 집이 흥학관 건너편 골목에 있었다. 장재성 선생은 틈만 나면 흥학관 정구장에서 정구를 쳤다고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그 발원지가 광주이기 때문에 명칭이 이렇게 정해졌으나, 실은 전 조선청년학생의 독립운동이었다. 목포에서 함흥까지 삼천리 방방곡곡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이 거국적 운동에 동참했다. 그 선봉에는 장석천 선생이 계셨다. 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모의하고 결의한 곳도 바로 이 흥학관이었다. 장석천 선생이 이때 쓴 격문은 지금도 나의 피를 끊게 한다.
”조선학생 청년이여 궐기하라. 광주를 지지하라.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조선을 위하여 바쳐라.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반항이 있는 곳에 승리가 있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들의 것이 아니냐.“ -1929.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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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문연대모임 ‘민주정신계승’ 동고송을 방문하다
광주에서 우리 시대의 큰 획을 그은 ‘오월항쟁’과 ‘민주화과정의 역사’를 공부하고 실천해 가는 <민주정신계승> 모임이 동고송을 방문하였다. 한 차례 학습을 원효사 선방에서 함께했으며, 이번 2월에는 동고송 초청 차담회를 열었다. 미래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자신부터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모인 40대 젊은 회원들에게 힘찬 기상이 엿보였다. 동고송 초청 자리에서 황광우 작가는 70년대 학생운동과 근대사 100년의 의향정신 속에 오월항쟁의 의미를 강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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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고송 ‘고전문학반’ 1학기 개강
동고송 <고전문학반>이 유미정 문학박사의 강의로 2월부터 시작되었다. 강의 내용은 중국 문예사를 빛낸 소동파 문학과 『24효(二十四孝)』 원문, 옛 그림 『선화화보(宣和畵譜)』를 1학기 과정으로 익힌다. 첫 강의는 ‘정든 땅 정든 사람 헤어지자니 서러워(感物凄然)’의 주제로 소동파의 편지글을 읽었으며, 중국 고대에서 송대까지의 인물 24인의 효 이야기가 담긴 『24효』 책은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효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옛 그림 감상은 그림과 글씨에 완성도 높은 기법을 구사하며 중국 회화의 새길을 열었던 송나라 황제 휘종의 ‘도구도(桃鳩圖)’였다. 특히 소동파의 산문 <왕문보 왕자변과 헤어지며(別王文甫子辯)>는 이별의 인간사가 아프면서도 잔잔하여 동학들이 서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눠 훈훈한 분위기였다. <고전문학반> 강의는 월 2회(목요일, 오후 6시) 동고송 강의실에서 진행한다. ♠ 강의 문의 : 010-9810-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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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고송 이사 소식
∎ 장석 이사 : 작년 12월에 일본 독자들과 일본 도쿄에서 두 차례 뜻깊은 북토크를 진행했던 장석 시인의 시가 연초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1면 인기 칼럼에 시가 소개되었다.
“사는 것들은 모두가 만신창이, 누더기가 되어 생을 마감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갈고리 달린 그물을 치고, 쓰레기를 투기하는 바람에 괜한 상처까지 입은 연어는 마지막에 그 삐뚤어진 입꼬리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동시대 한국 민주화운동에 계속 합류하지 못하고 굴 양식에 종사한 뒤 40년의 침묵을 두고 지은 시 중 하나 <연어의 길>(도다이쿠코 번역, 시선집 [너는 사람의 길을 가지 말아라] 수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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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석철 이사 : 배석철 이사는 선천적 종양 유전자 방어 체계를 활용하여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는 바이오 벤처기업인 ‘진크래프트’의 대표이사이며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석좌교수이다, 이번에 세계 최초 폐암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 (IND) 계획이 한국식약처에서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특히 이번 식약처의 승인으로 ‘RX001’은 KRAS 변이 유전자 치료제 가운데 임상시험에 진입한 전 세계 최초의 약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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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국전 이사 : ‘아트스페이스흥학관’ 대표 주국전 이사는 흥학관 개관에 맞춰 100년 전 광주전남 청년들의 독립 의지와 함께 예술문화의 산실의 터였던 흥학관에서 공연을 준비하였다. 옛 가요를 신선한 재즈풍으로 편곡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살린 이번 공연은 이문세, 유재하, 조용필, 조덕배, 김정호 등의 유명 곡들을 지역을 대표하는 연주자들이 연주하였다. 흥학관의 뜻과 역사에 대한 동고송 황광우 작가의 인문학 콘서트가 공연 전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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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광우의 ‘논어’ 산책 - “공자의 제자 사랑”
“먼 곳에서 벗이 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공자는 말했지만, 논어를 훑어보면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공자에게 벗은 그의 제자들이었던 것 같다. 공자는 40대 후반 출사하기 전까지 제자들과 함께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50대 초반 노정공에게 출사한 이후, 지급받은 녹봉은 죄다 제자들과 함께 나누어 썼을 것이다. “군자는 배불리 먹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라고 하지 않았던가?
“회는 어질다.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가난한 마을에서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회는 그렇게 살면서도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회는 어질도다.[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며 안연의 안빈낙도를 칭송하였다. 이 구절은 안연의 추도사인데, 제자의 안빈낙도를 칭송하면서 만일 제자의 빈곤을 외면했다면 공자는 존경받는 스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 “거친 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잘지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나니, 불의하게 획득한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이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설파해 놓고서 궁핍한 제자들을 돌보지 않았다면, 이 구절은 위선이 된다. 50대 후반 위나라에서, 60대 초반 진나라에서 공자는 군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이때 따라다니는 제자들을 외면하고 혼자서 호의호식하였다면, 공자 사후 제자들이 삼년상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을 자식 이상으로 아꼈다. 군주로부터 급료를 받을 때는 제자들과 함께 품위 있는 삶을 누렸고, 남행 주유의 시련을 겪던 시기엔 제자들과 함께 그 고초를 겪었다. 제자들과 함께 이룬 ‘구도공동체(求道共同體)’, 이것이 공자 삶의 비밀이다. 제자들과 어떤 교류를 나누었던가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논어』를 해독하는 열쇠이자 공자의 실존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구도공동체, 그 선두에는 안연이 있었다. 공자가 금슬이 좋지 않았던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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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고송 행사 안내 ♠
∎ 동고송 유용상 이사장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 출간례
일시 : 2025년 4월 11일(금) 오후 6시
장소 : 전남대 의과대학 학동캠퍼스 명학회관(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8)
주최 :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 전남대학교 출판문화원
∎ ‘노자주역반’ 개강
일시 : 2025년 3월 7일(금) 오후 5시 (월 2회 금요일)
장소 : 동고송 강의실(북구 두암동 군왕로 92, 2층)
강사 : 노자 도덕경(김용표 강사), 주역(고용호 강사)
∎ 동고송 세계테마기행
일시 : 2025년 5월 3일(토)~5월 11일(일)
대상국 : 발트연합3국(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참여 : 동고송 회원 시민 30명(완료)
∎ 동고송 인문기행답사
일시 : 2025년 4월 18일(금)~4월 19일(토)
답사지 : 부여 일대
참여 : 동고송 회원 시민 30명 신청 접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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