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은 좋으나 정의당은 싫다고? 태극기를 흔들던 성조기를 흔들던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광화문의 뜨악한 풍경을 보고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나는 얼마나 싸워왔던가? 집회를 하면서 함성을 지르고 나면 그렇게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다들 체험했으리라. 악을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어르신들도 체득했으리라. 나는 고교시절 0.7평 징벌방에 갇혀 살았던 옥고(獄苦)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그런데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일 년에 서너 번 소식을 듣고 사는 처가의 식구로부터 “노회찬은 좋으나 정의당은 싫다.”는 변설을 듣고 한동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나간다고 당당하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적대적이 되어버렸는지, 최근의 위험한 세태를 절감하였다. 조국을 씹을 수도 있고, 청와대에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다. 역시 나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입에서 일관성이 없는 말,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말, 겉과 속이 다른 말이 나오면 나는 참지를 못한다. 이순(耳順)을 넘어서버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선은 나의 피를 끓게 한다. 노회찬이 좋으면 정의당도 좋아야 한다. 이게 상식이다. 정의당이 싫으면 노회찬도 싫어야 한다. 이게 맞다. 그런데 ‘노회찬은 좋은데 정의당은 싫다’ 이 무슨 궤변이냐? 나의 아내가 평소 노회찬을 그윽히 존경해왔음을 알기에 아내의 비위를 맞추는 말 봉사인가? 나도 ‘노회찬처럼 정의의 편에 선 사람’임을 힘주어 말하는 자기과시인가? 그것은 위선이었다. 정의당을 그냥 씹으면 추해 보이니까, 먼저 한 자락을 깔아놓는 것이었다. ‘나, 그래 뵈도 노회찬을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정의당 요즘 하는 꼬라지가 맘에 안 들어. 다 엎어야 돼.’ 그것은 결국 태극기부대의 이념적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었다. 나는 부탁한다. 정의당이 맘에 안 들면, 그냥 정의당 싫다고 말하라. 노회찬도 싫다고 말하라. 왜냐하면 노회찬은 정의당이고, 정의당은 노회찬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진중권 씨의 언행이 걱정스럽다. 진중권 씨가 조국을 씹을 수 있고 민주당에 훈수를 들 수도 있고 황교안에게까지 가서 쓴 소리를 할 수있다고 본다. 진중권 씨가 정의당을 탈당한 것, 정치적 결사의 가입과 탈퇴는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는 거 아닌가? 그런데다. 조국 사태에 대해 노회찬이라면 자신을 지지했을 거라는 진중권의 발언은 듣기가 거북했다. 지금 정의당을 버리는 판국이라면 노회찬까지 깔끔하게 버려야 옳지 않은가? 나는 부탁한다. 앞으로 한 번 더 노회찬을 언급하려면 먼저 정의당에 대한 노회찬의 진심을 숙려해줄 것을 부탁한다. 노회찬은 정의당을 좋으면 남고 싫으면 떠나는 절로 만들지 않았다. 정의당이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당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의당이 없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망뿐이기 때문이다. 노회찬에게 정의당은 목숨만큼 귀한 ‘우리의 미래’였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노회찬은 정의당이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폐를 끼칠까봐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았다. 이점을 잊지 말아 달라. 나는 요즈음 문정은이라는 청년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노회찬은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하지 않으면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고 보았고, 그래서 20대 젊은 청년을 당의 부대표로 발탁하는 획기적인 제도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발탁된 젊은이가 문정은이다. 2018년 ‘노회찬을 보낼 수 없다’는 글을 썼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뛰어든 진보정당 운동이었는데, 이렇게도 진보정당의 가는 길이 힘들다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합니다. 선장을 잃은 진보정당의 조각배는 이제 무엇에 의지하여 망망대해를 헤쳐가야 하나요?” 나는 지금 문정은과 같은 젊은이에게서 진보정당의 희망을 찾고 있다. 합수 윤한봉 기념사업회 상임이사 황광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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