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황광우의 산책》 광주학생독립운동
장석천 선생이 1930년 1월 5일 일본 관헌에게 진술한 신문조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배후 조직이 조선공산당이었음을 증거한다. 나아가 1929년 5월 장재성 선생이 유학 도중 서둘러 귀국하게 된 배경을 드러내 준다. 보자.
소화 4년(1929년) 4월 2일경 경성에서 청년총동맹 위원 간담회가 개최되었을 때, 차재정과 회합을 하였다. 차재정은 “공산당이 검거되었으므로 그 뒤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전라남도를 맡아 달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전라남도 책임자로 되어 재조직의 임무를 맡을 것을 쾌락하였다. 나는 5월 10일경 광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5월 20일경에 광주청년회관 안에서 장재성을 만나서 이야기해서 가입시켰다. 장재성더러 각 학교에 세포를 조직하고, 학생부의 책임을 지고 조직할 것을 말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으로 전파한 조직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공산당’이었다. 위 신문조서에 의하면 1929년 4월 조선공산당 재건 책임자는 차재정이었고, 장석천은 조선공산당 재건의 전남도책임자였다. 돌아와 장석천은 나승규를 비롯한 주요 활동가들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전남조직으로 묶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공부에 열중하던 후배 장재성을 광주로 불러들였다. 장석천은 조선공산당 전남도 재건위의 학생부를 조직하는 임무를 장재성에게 맡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