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황광우의 산책》
폴란드의 유럽연대센터를 보고
<인문연구원 동고송>은 2024년 2월 15일 폴란드로 인문여행을 떠났다. 그다니스크 공항 출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는 폴란드에 여행을 오는 한국인은 매우 희귀하다며 환영 인사를 대신하였다.
첫 여행지는 말보로크성이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최대 규모의 중세 성이다. 성에는 적의 침공을 막기 위한 해자와 도개교가 설치되어 있었다. 중세의 기사들이 식사하던 식당과 부엌 그리고 밀을 빻던 정미소가 있었다. 예배당도 있었고, 커다란 홀도 있었다. 그야말로 교과서에서 보던 성의 실내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폴란드는 독일의 영향을 받아 사회복지가 탄탄하다. 국민 일인당 연금이 평균 150만 원 나오기 때문에 폴란드 국민들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별도의 저축을 할 필요가 없다. 폴란드인은 한 해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일은 한다. 일이 끝나면 모두 집으로 간다. 가족의 화목은 폴란드인들의 최고 가치이다.
영국, 프랑스와 달리 폴란드인들은 인종 차별을 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간섭에 의해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폴란드인들은 강대국에 억압받는 약소민족에게 우호적이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하며,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해 우호적이다.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단스크(Gdansk)의 시내를 거쳐 버스가 당도한 곳은 유럽연대센터(European Solidarity Center) 곧 자유노조박물관이었다. 1980년대 폴란드 공산 체제를 무너뜨린 자유노조의 본거지,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 우리는 왔다. 5층 높이의 검붉은 철제로 지은 ‘유럽연대센터’는 거대한 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단스크 조선소가 혁명운동의 본거지였음을 자부하는 건물이었다.
자유노조박물관 내부에 들어갔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입었던 작업복과 모자를 전시한 것이 신선하였다. 홀에는 도처에 대형 티비가 설치되어 있었고, 1980년대 투쟁하던 노동자들의 연설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벽에는 당시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대자보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넋을 잃었다. 내 젊은 날을 빨아들인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 민주대항쟁과 1988년 노동자대파업이 이곳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같았다. 혁명의 시대, 민중이 행동하던 시대였던 점에서 폴란드나 한국은 그렇게 같은 시대를 보냈다. 달랐다. 폴란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해체를 위시하여 이어지는 유럽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서 오늘날 자랑스럽게 자신의 역사를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것이 유럽연대센터(European Solidarity Center)였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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