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광산인생자서전 글쓰기-삶이 문학이 되는 시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누구나 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다. 지난해 북구와 광산구에서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이십여 명의 시민 작가를 배출했던 사)인문연구원 동고송은 황광우 작가와 유미정 작가의 강연으로 올해도 ‘인생 글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의 기억은 곧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기록이다.
한 권의 자서전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따뜻한 유산이 될 것이다. 자서전 글쓰기는 내 삶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으며 세월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문학적 여정이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문학적 언어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통해, 삶을 새롭게 발견하는 성장의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더욱 따스한 온기로 채워가는 ‘인생자서전글쓰기’ 과정은 9월에서 11월까지 총 8차에 걸쳐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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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광산아카데미 9월 강연
2026년 9월 11일(금) 광산아카데미 9월 강연이 박시동 경제평론가의 열띤 강연으로 광산문화예술회관 500석 자리를 가득 채우며 펼쳐졌다. 박시동 평론가는 강연에서 경제와 주식이 단지 숫자와 수익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Humanism과 공동체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코스피 10,000시대’라는 비전은 기술적 전망을 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지평을 의미했다.
박시동 평론가가 제시한 코스피 10,000포인트의 핵심 동력은 자본의 팽창을 넘어서 기술과 산업을 일구어낸 국민적 참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타인의 언어나 일시적인 요행에 흔들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며 장기적 부의 선순환을 기다리는 투자의 태도도 언급하였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조급함을 경계하라!”라는 메세지는 고전적 성찰 및 인문학적 자도(自導)의 과정과 깊이 맞닿아 있는 것을 느꼈다. 거시경제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명확한 통찰력과 부를 올바르게 지키고 나누려는 윤리적 마인드셋이야말로 불확실한 시대를 건너는 가장 현명한 투자의 길임을 강조한 강연이었다. 광산아카데미를 찾는 광주 시민의 열렬한 성원 속에 박시동 평론가의 경제 부문 강연을 성황리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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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치산 리포트』 출간례를 열다
9월 16일(수) 오후 3시, ‘245전일빌딩’ 9층 다목적홀에서 광주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황광우 작가의 신작 『빨치산 리포트』 출간례가 열렸다. ‘역사의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춘 전설의 빨치산 총사령관에 바치는 헌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한 시대의 기록이자 이름 없이 스러져간 영혼들을 향한 진혼곡이다. 조국의 해방과 민중의 삶이라는 대의를 품고 험난한 산야를 누볐으나, 역사의 이면에서 쓸쓸히 사라져간 이들의 발자취 앞에 저자는 한 권의 책으로 순정한 헌사를 바쳤다.
정찬경 성악가의 ‘부용산’의 노래와 김연우 무용가의 춤사위에 이어 오병윤 선생은 김선우 연보를 낭독하였다. 동구 임택 청장과 광산구 박병규 청장의 축사에 이어, 다산 연구의 권위자 박석무 선생, 독립운동가 후손 정찬국 선생의 곡진한 회고는 황광우 작가가 쏟아부은 열정 어린 노고에 감사하는 것이었다. 이날 감동을 자아낸 순서는 단연 헌정식이었다. 김선우 총사령관의 유가족인 동생 김결 선생에게 책이 건네지는 순간, 공간을 메운 모든 이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연로한 노구로 자리를 지킨 김결 선생이 72년 만에 영웅으로 부활한 형의 이름을 마주하며 느낀 감개무량함은, 참석한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이어 진행된 ‘이야기 마당’은 김선우 총사령관의 타계 72주년을 기리며, 파란만장했던 삶의 궤적과 그 속에 얽힌 역사적 진실을 차분히 되짚은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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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방문하다
9월 21일(월), 인문연구원 동고송 일행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무거운 상흔이 서린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찾았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문국주 이사장이 따뜻하고도 결연한 마음으로 찾는 이들을 맞이하며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1976년 내무부 치안본부 산하로 설립된 남영동 대공분실은, 오랜 세월 국가 폭력과 인권탄압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짓밟았던 칠흑 같은 공간이었다. 1985년 김근태 의원의 끔찍한 고문 사건이 자행되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거대한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악명 높던 그 철옹성은 이제 시대의 아픔을 딛고,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KDEMO)’로 거듭나 과거의 상처를 치유의 역사관으로 밝히고 있었다.
이날 문국주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동고송은 한국 현대사의 기저를 지탱해 온 소중한 기록들을 발굴하기 위한 제안을 건넸다. 첫째는 1975년부터 1980년 전후까지 전국 각지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노동야학’의 역사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일이다. 둘째는 1986년 5·3인천항쟁부터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혁명적 노동운동’의 궤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사업이다.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진정한 역사를 기록 묘사하자는 제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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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광우의 산책길 – 국주 형을 만나던 날
어려서부터 형제지간처럼 지내온 문국주 형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이 되었다길래 축하 인사를 하러 서울행 열차를 탔다. 국주 형과 함께 경유한 지난 세월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1975년 5월, 고2 학년 때 나는 학교에서 잘렸다. 외톨이가 되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으나, 대입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난제였다. 영어나 수학은 일찍이 마스터하였으나 물리와 화학이 힘들었다. 그때 나의 집을 방문하여 물리를 가르쳐 준 과외 선생이 국주 형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형도 빵잽이의 힘든 길을 걷던 시절이었다.
1980년 5월, 전두환은 청년 학생 운동가들 100여 명에게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수배령을 내렸다. 박석무, 윤한봉, 박관현, 박효선 등 광주 청년들의 얼굴이 수배 사진에 올랐고, 문국주, 고아석, 황광우 등 서울 청년들의 얼굴이 수배 사진에 올랐다. 나는 국주 형이 인도하는 대로 국주 형 지인들의 집을 전전 걸걸하였다. 이번에 국주 형이 국가의 녹을 받게 되었다. 나라의 민주화에 청춘을 바친 지 무려 52년의 세월이 지났다. 천사보다 더 착한 국주의 심성을 아는 지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하였을 것이다. 국주 형이 취임한 장소는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여 죽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역전의 드라마였다.
“형, 그때 말이요, 우리를 숨겨 준 분 있잖아요, 연제동 기자촌 근처에서 살던 분 말이에요, 그분이 누구였어?”
“응, 신문사 기자 선배였어, 나도 가물가물하다.”
“변연식 누이 집에는 어떻게 가게 되었나요?”
“정문화 부인 천영초가 연결시켜 주었을까?”
전두환의 운동권 탄압이 오뉴월 독오른 뱀처럼 사나웠던 그 시절, 우리가 수배망을 피하여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은 위험을 공유하며 우리를 보호해 준 지인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사장실에는 한 분의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앉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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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모후산을 다녀오다
도곡면 원화리(204-2) 오리탕 집의 음식 맛은 유달리 깊은 개미가 있어 언젠가 한 번은 음식을 먹기 위해 오고 싶었는데, 2026년 9월 6일, 내가 존경하는 벗 고사부와 함께 이 집에서 오리탕을 먹자고 제안한 까닭은 시시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먹고 마시는 식도락을 즐기기 위한 것에 그 저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75년 전, 역사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던 화순 모후산의 넋을 기리는 데 그 뜻이 있었다.
지금은 주암호 맑은 물에 에워싸여 있어 내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쳐다보니 과연 산은 웅혼하였고, 지금은 산꼭대기에 기상관측대가 들어서 있어 손을 뻗으면 잡힐만한 곳에 자리를 하고 있으나, 75년 전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땅굴을 파고 기지를 세웠을 무렵만 하더라도 맑은 냇물 말고는 인적조차 없는 태고의 원시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 인간의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 또 있었으니 부처의 나라 불국(佛國)을 만들기 위해 한평생 바쳐 버린 스님들과 스님들을 보좌하기 위해 여생을 바친 보살들이었다. 유마사(維摩寺)로 이어지는 길가에 조그만 석등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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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부처님 못지않게 큰 존재를 보살로 치는데, 각(覺)을 얻어 적멸의 그곳 니르바나로 들어가버리는 부처님과 달리 고통받는 중생의 곁에서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하는 이를 보살이라 한다. 문수보살이니 보현보살이라 부르는데, 유마거사는 병상에서 문수보살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의 병은 보통의 병이 아닌 큰 병입니다.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저도 앓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75년 전의 아픔을 찾아 이곳에 들어섰는데, 1400년 전에도 이 땅에는 아픔이 많았나 보다. 627년(백제무왕 28)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바로 이곳 모후산 깊은 곳에 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고 부처님을 모시고 도량을 창건하여 이름을 ‘유마사’라 하였다.
파르티잔, 그들은 유마거사가 아니었을까?
박갑출-화순 동면 탄광노동자 출신. 도당 조직부장. 1955년 비트가 발각되어 자결함.
박만상-화순 동북면 출신. 소년으로 입산. 조계산지구에서 활동. 1954년 3월에 생포.
박복실-화순 북면 출신. 도당연락부원. 전남부대 제3중대원. 1954년 2월 백운산에서 생포.
박종갑-화순 이서면 출신. 광주지구유격대(540부대) 정보과원. 가족 전원이 몰살당함.
박진수-화순 북면 출신. 총사 제1연대 대원. 전사.
박현채-화순 북면 출신. 백아산 입산. 광주지구 유격대 대원. 후에 『민족경제론』 저술.
양해정-화순 도곡면. 본명은 양인승. <전남노동신문> 필경. 1954년 4월 중상. 백운산 체포.
양득승-화순 도곡면 출신. 화순군당에서 일함. 제1차 침공 때 화학산에서 생포.
오지호-화순 동복. 화가. 백아산 입산 뒤에 백운산으로 이동. 1952년 백운산에서 생포.
이남래-보성 구빨치. 총사 문화부사령관. 지하 침투했으나 비트가 탄로나 현장에서 자결.
이방휴-화순 도곡. 구빨치. 유치 지구책. 도당 부위원장. 1953년 1월 전사.
이태식-화순 도암. 이방휴의 조카. 광주지구유격대(540부대) 대장. 전사.
시인 김해화는 “잘나고 똑똑한 넋들”이라 불렀다.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잘나고 똑똑헌 사람들은 다 산으로 갔시야. 가서는 암도 돌아오들 안 했그먼. 그 뒤로 시상에 잘난사람 한나도 없드라야.”“할머니는 밤마다 고봉밥 한 그릇아랫목에 묻어두고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할머니의 잘나고 똑똑헌 사람들을 데려간 모후산. 해마다 3월이면 등불 같은 꽃 피어납니다. 잘나고 똑똑한 넋들이 환한 꽃 피웁니다”고 시인은 읊조렸다. 정관호 선생은 『전남유격투쟁사』에서 남겼다. “곁에 동무가 있으면 외롭지 않았다. 보초선에 동무가 서면 믿고 잠을 잤다. 그저 동무가 최고였다. 아, 우리 동무, 가신 동무들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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