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황광우의 산책》
- 장흥의 문충선<지식공작소> 방문하다
장흥에 가면 ‘지식공작소’라는 특이한 이름의 인문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을 이끄는 분은 문충선 씨이다.
30년 전, 그러니까 1990년대 전남대를 다닌 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청년글방>이라는 인문사회과학서점 말이다. 그 <청년글방>의 운영자가 문충선 씨였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밤들을 포장마차에서 함께 보냈다.
어느 날 문충선은 소리 없이 광주를 비우고 사라졌다. 바람에 실려 오는 소리에 의하면 장흥에서 은거(隱居)한다는 것이다. 나도 시골로 들어가 세상 같은 것은 버리고 살고 싶어 안달하던 때가 있었다.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광주와 장흥이 먼 거리가 이닌데, 장흥의 은자(隱者)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3월 18일, 인생의 묵은 숙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장흥에 갔다.
늘 여유롭고 착한 그 얼굴, 잔잔하게 이어지는 저음의 그 말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한 것 말고는...
문충선은 장흥의 맑은 하늘 밑에서 무엇인가 공작하고 있었다. “1930년대 항일 농민운동가들의 일대기를 많이 찾아놓았습니다. 함께 일 하게요.”
- <오마이뉴스, 황광우의 역사산책>
1926년의 6·10만세운동, 1927년의 신간회, 1929년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모두 조선공산당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공산당을 만든 안동의 김재봉 선생은 사서삼경을 암송하며 자란 선비였다. 감옥에서 『맹자』와 『시경』을 독서하였고, 한문으로 시를 짓고 암송한 분이었다. 김재봉 선생을 도와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부안의 김철수 선생 역시 선비였다. 황지우 시인의 서재에는 김철수 선생이 남긴 붓글씨 한 점이 걸려 있다. 종신토록 실천할 가치가 있는 한마디 말은 무엇입니까라고 자공이 묻자 공자는 답했다. “그것은 서(恕)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 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제강점기에 고초를 겪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높은 인격을 갖춘 분들이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12574 |